[생각 나누기]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History i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라고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했다. 그는 역사를 단순한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의식과 질문에 따라 과거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는 객관적 진실이라기 보다는 해석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떨까?
지금 시점에서 미래의 역사를 미리 해석하고 기록할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역사는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그대로이고, 무엇이 변하며, 어떻게 변하는지 가르쳐준다.”고 말한다. 그는 인류의 기원부터 미래, 그리고 AI 시대의 현재까지를 관통하며 인간 존재의 변화와 가능성, 그리고 미래를 위한 준비과정을 탐색한다.
유발 하라리의 인간 역사 3부작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까? 유발 하라리는 우리 인간종을 가리키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과거 역사를 먼저 짚어본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에 대해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을 던진다. 수 십 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하여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급급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는 지구 전체의 주인인 냥 행사하고 있다. 하라리는 그의 다음 책 신이 된 인간을 뜻하는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의 미래 역사를 기록한다. 생명공학, 인공지능(AI), 데이터 종교 등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초월 존재로 바꾸려 하는지를 조망한다.
중세와 근대 초기의 전쟁사가 전공이었던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 출간 이후 AI 전문가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이후, 컴퓨터와 과학기술에 전문적 지식은 없었던 그가 특히 ‘정보 네트워크’에 집중하여 <넥서스>에서 AI와 함께 할 인간의 미래를 예측한다. 아니, AI로 파괴될지도 모를 인간의 미래를 경고한다. 무엇이 변하며 어떻게 변하게 될지를 말하며, 우리의 변화를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만들어 가자고 권유한다.
넥서스 – 연결점의 변화와 미래
‘넥서스(Nexus)’는 연결점, 결합, 접속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AI 등 정보 기술에 의한 개체, 통칭해서 ‘컴퓨터’의 출현은 기존 정보 네트워크와는 다른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 하라리는 컴퓨터(AI, 인공지능)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느냐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 목표를 추구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컴퓨터의 출현이 정보 네트워크의 기본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컴퓨터는 기존의 정보 네트워크와 어떻게 다른가? 기존의 점토판(문자 혁명), 금속활자기(인쇄 혁명), 라디오(통신 혁명)에 의한 정보 네트워크의 발전은 혁명적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네트워크 구성원들을 연결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그러나 컴퓨터는 그 자체가 정보 네트워크의 완전한 하나의 구성원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하라리는 이렇게 표현한다.
컴퓨터는 무엇보다는 정보 네트워크의 새로운 비인간 구성원이다. (p.302)
비인간 구성원! 그렇다. 컴퓨터가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 논점이 아니다. 이제 인공지능 AI를 탑재한 컴퓨터 그 자체가 비인간 구성원으로 인간 정보 네트워크에 자리 잡았음이 중요한 점이다.
AI와 함께할 인류의 미래를 위한 원리
하라리는 인간 사회가 ‘상호주관적 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돈, 국가는 모두 집단적 믿음에 기반한 허구이지만, 그것이 현실처럼 작동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상호주관적 현실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처럼 퍼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데 이제 이 ‘상호주관성’이 인간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컴퓨터가 많은 컴퓨터와 서로 소통할 때 컴퓨터들도 인간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상호주관적 현실과 비슷한 상호 컴퓨터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고 하라리는 주장한다. 이것은 강력하고 또 인간에게 위험해질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변화에 민주주의 사회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하라리는 네 가지 원리를 제안한다.
- 첫째, 선의 (Goodwill)
- 둘째, 분권화 (Decentralization)
- 셋째, 상호주의 (Mutual Responsibility)
- 넷째, 감시 시스템에 항상 변화와 휴식의 여지를 남겨 두는 것
이 네 가지 원칙은, 기술의 힘이 권력을 가지고 인간 통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민주주의 사회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AI시대, 정보 네트워크 혁명은 현실이다. 정보 기술의 발전은 전 세계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만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정보 기술은 너무나 강력해서 인류를 갈라놓으려 한다. 하라리의 표현처럼 ‘최근 수십 년 동안의 핵심 은유가 웹이었다면, 미래의 은유는 고치’가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실리콘 장막에 가려 각자의 정보 고치에 갇힌 채 점점 더 고립되어 갈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지혜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하라리의 다음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보에 대한 순진한 관점과 포퓰리즘적 관심을 모두 버리고, 무오류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강력한 자정 장치를 갖추 제도를 구축하는 힘들고 다소 재미없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p.560)
<넥서스>는 단순한 AI 기술 서적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정치적 성찰을 요구하는 제안서이다. 기술이 만들어가는 변화 앞에서 우리는 방관자가가 아니라 행동하는 선택자로 살아야 한다. 그 선택에 의해 미래의 역사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로 기록될지 결정될 것이다.
@ moowoolbiz
[책 본문에 밑줄 긋고 더 생각해 보기]
발췌 1.
상호주관적 현실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말하는 이야기 속에 존재한다. 사람들이 상호주관적인 현실에 대해 주고받는 정보는 정보 교환 전부터 존재하던 무언가를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정보를 교환할 때 상호주관적 현실이 생긴다. (중략) 즉, 상호주관적 현실은 정보를 교환할 때 생긴다. – p.67 (2장. 이야기: 무한한 연결)
■ 문장의 핵심 의미
- 하라리는 상호주관적 현실이 물리적 세계처럼 객관적으로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서로 소통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창조되고 유지된다고 설명한다. 상호주관적 현실(예: 돈의 가치, 국가, 종교, 법 등)은 집단적 믿음과 합의에 의해 존재하며, 그 존재는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 이 문장이 던지는 추가 질문
- 만약 정보의 전달 방식이 변하면, 상호주관적 현실도 바뀔까?
- AI도 상호주관적 현실을 만들 수 있을까?
- 서로 다른 상호주관적 현실이 충돌할 때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가?
■ 결론
- 상호주관적 현실은 우리가 공유하는 이야기와 의미 체계를 통해 창조되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제도, 가치, 문화적 개념들이 단순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재창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라리의 이 통찰은 인간 문명의 근간이 되는 많은 구조들이 물리적 현실보다는 공유된 믿음 체계에 기반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 상호주관적 현실은 사실의 반영이 아니라 소통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조작될 수도 있으며,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AI 시대에는 정보 교환의 주체와 구조가 바뀌는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재구성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구조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책임 있는 대화를 선택해야 한다.
발췌 2.
가시철조망이 한 국가와 다른 국가를 분리하던 냉전 시대에 철의 장막은 많은 곳에서 말 그대로 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제는 점점 실리콘 장막이 세계를 분리하고 있다. 실리콘 장막은 코드로 만들어지고, 전 세계의 모든 스마트폰, 컴퓨터, 서버를 통과한다. (중략) 실리콘 장막 건너편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 p.523 (11장. 실리콘 장막: 세계 제국인가, 세계 분열인가?)
■ 문장의 핵심 의미
- 하라리는 현대의 정보기술이 새로운 형태의 분단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 냉전 시대의 '철의 장막'이 물리적 장벽이었다면, 오늘날의 '실리콘 장막'은 디지털 코드와 알고리즘, 플랫폼을 통한 정보 통제와 접근 제한으로 작동한다. 국가 간, 계층 간, 이념 간 정보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단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훨씬 더 구조적이고 깊다. 이 새로운 장벽은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고 디지털 영역에서 세계를 분할하는 역할을 한다.
■ 이 문장이 던지는 추가 질문
- 우리는 지금 어떤 실리콘 장막 안에 살고 있는가? 내가 사용하는 플랫폼, 알고리즘은 나의 정보 세계를 어떻게 제한하고 있나?
- 디지털 주권과 인터넷 검열은 실리콘 장막 강화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 정보에 대한 접근권은 새로운 ‘계급 차이’를 만들고 있는가?
- 이 장막은 자발적인 것인가, 강요된 것인가? 우리는 편리함을 대가로 '자발적 감금'을 택한 것은 아닐까?
■ 결론
- ‘실리콘 장막’이라는 은유는 기술이 단순히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보는 보여주고 어떤 정보는 차단함으로써 세계를 분리하고 있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그것은 냉전식 억압의 방식이 아니라, 조용하고 체계적인 정보의 차단과 필터링을 통해 이뤄지는 통제다. 우리가 정말 자유롭게 정보를 보고, 판단하고, 소통한다고 믿는다면, 그 ‘자유’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먼저 성찰해야 한다. 실리콘 장막의 내부에 있는 우리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정보 민주주의’의 길을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 실리콘 장막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세계 질서의 근본적인 재편을 나타낸다. 과거 물리적 국경과 이념적 분열이 세계를 나누었다면, 오늘날에는 디지털 인프라, 데이터 정책, 알고리즘적 통제가 세계를 분할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분열은 글로벌 정보 접근성에 불평등을 초래하고, 서로 다른 디지털 생태계 간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는 인류가 초연결 시대에 직면한 중요한 도전으로, 기술 발전이 가져온 연결성 증가와 동시에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분열을 보여준다.
[기억해 둘 만한 문장들]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를 정복한 이유는 정보를 현실의 정확한 지도로 바꾸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피엔스의 성공 비결은 정보를 활용하여 많은 개인을 연결하는 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것이다. – p.56 (1장. 정보란 무엇인가?)
이야기는 가짜 기억을 심고 허구적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주관적 현실을 창조하는 것을 통해 대규모 인간 네트워크를 짰다. – p.71 (2장. 이야기: 무한한 연결)
‘질서’를 공정이나 정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 p.81 (2장. 이야기: 무한한 연결)
나는 2019년에 체르노빌을 둘러보러 갔을 당시 원전 사고의 원인을 설명하던 우크라이나인 가이드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인은 질문을 하면 답을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지만, 소련 시민들은 질문을 하면 곤란에 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 p.265 (5장. 결정: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간략한 역사)
1968년에 시카고나 파리에서 촬영된 사진을 본다면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 p.277 (5장. 결정: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간략한 역사)
인간인 척하는 컴퓨터와 정치 토론을 하면 우리에게는 두 가지 면에서 손해다. 첫째, 봇은 설득되지 않는 존재라서 봇의 의견을 바꾸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은 무의미하다. 둘째, 컴퓨터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우리에 관한 더 많은 사실이 공개되고 그 결과 봇이 자신의 주장을 가다듬어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행사하기가 더 쉬워진다. – p.306 (6장. 새로운 구성원: 컴퓨터는 인쇄술과 어떻게 다른가?)
2022년 4월 외환시장의 거래량은 하루 평균 7조 5,0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거래의 90퍼센트 이상을 이미 컴퓨터까지 직접 대화하며 처리한다. – p.313 (6장. 새로운 구성원: 컴퓨터는 인쇄술과 어떻게 다른가?)
인간은 평균적으로 1분에 약 250개의 단어를 읽을 수 있다. (중략) 40년의 임기 동안 약 26억 개의 단어를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중략) 언어 모델 라마와 같은 언어 알고리즘은 분당 수백만 개의 단어를 처리할 수 있으며, 26억 개 단어를 두세 시간이면 ‘읽을’ 수 있다. – p.341 (7장. 집요하게: 네트워크는 항상 켜져 있다)
창의성은 종종 패턴을 인식한 다음 그 패턴을 깨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 p.449 (9장. 민주주의: 위리는 계속 대화할 수 있을까?)
[책 목차]
프롤로그
제1부. 인간 네트워크들
제2부. 비유기적 네트워크
제3부. 컴퓨터 정치
에필로그
[책 기본 정보]
1. 제목: 넥서스 (원제: Nexus: A Brief History of Information Networks from the Stoen Age to AI)
- 부제: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 저자: 유발 하라리
- 번역: 김명주
- 출판사: 김영사
- 출판년도: 2024년 (원서: 2024년)
- 쪽수: 683쪽
- 카테고리: 인문학, 미래학, 역사학
2. 저자: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1976 ~ )
유발 하라리는 1976년 이스라엘 하이파(Haifa)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중세 및 군사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자 철학자다. 그의 대표 저서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인간의 역사, 미래, 현대 사회를 통찰력 있게 조명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기술, 인공지능, 의식의 진화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루며 대중과 학계 모두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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